사극풍 시 모음집

밤하늘 아래서 검은 강 위를 미끄럽게 노니는 희고 흰 오리 한 쌍을 보았소. 심해와 같은 검은 강 위로 붉은 낙엽이 스며들고 노란 달빛이 찰랑거렸소. 매화가 지고 나면 보러 가세. 봄이 방문하면 함께 가세. 푸르른 하늘의 품에서 새파란 강 위를 애정하듯 노니는 희고 흰 오리 가족을 보러 가세나. 구름처럼 하늘하늘한 강 위로 분홍빛 벚꽃잎이 춤을 추고 고운 ...

산 속 깊이 심심한 장난스러운 호랑이 하나.

어슬렁, 어슬렁. 오동통한 꼬리털 휘날리며, 새노란 눈빛 환히 밝히며, 어슬렁, 어슬렁. 산속 깊은 곳, 외로운 호랑이 하나, 산을 지나는 사람마다 주위를 어슬렁, 어슬렁. 산 속 깊은 곳 장난스러운 호랑이 하나 산을 지나는 사람 앞에 번쩍 나타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어흥, 쫘악 하품을 하며,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어흥, 쭈욱 기지개를 피...

밤 하늘 아래서 검은 강에 미끄러지듯 노니는 희고 흰 오리 한 쌍을 보았소. 심해와 같은 검은 강 위로 붉은 낙엽이 스며들고 노란 달빛이 일렁였소. 매화가 지는 날에 보러 가세. 푸르른 하늘 품에서 새파란 강 위를 사랑하듯 노니는 희고 흰 오리 가족을 보러 가세. 구름과 같은 하늘하늘한 강 위로 진홍빛 벚꽃잎이 스며들고 그대를 향한 마음이 살랑이는 낮 하늘...

당신의 손으로 빚어진 내 모습을 당신은 말린 꽃이라 말씀하셨죠.

난 말린 꽃이 좋소. 시간을 멈출 수 있다는 오만함이 생기니 말이오. 난 날 좋아하는 당신이 좋소. 나도 사랑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생기니 말이오. 신이라는 것들은 좋아하지 않소. 날 사랑하노라면, 날 어리석게 만들지 않을 테니 말이오. 내가 멍청하다면, 내가 무감각하다면 나를 말린 꽃처럼 대하는 당신이 좋소. 난 말린 꽃이 좋소. 말라버린 이 몸을 가지고...

내겐 거짓된 희망이 있소, 그렇지만 어떠하리. 난 비참해지고 싶지 않으니 말이오.

실타래처럼 엉켜버린 나의 숨을 풀어주오. 늪지대처럼 진득해진 나의 맘을 씻겨주오. 저 아스라이 핀 꽃잎에도 나 바스라져, 구원해주오. . . . . 강렬한 태양 아래에 서서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내셔본 적이 있소? 난 없소, 숨쉰다는 건 마냥 버겁소. 하지만 말이오, 누가 그러는데, '사랑'이란 걸 하면 새 삶을 산다고 했다네. 그래서 난 날 구원해줄 이를...

곱디 고운 우리의 향, 이젠 눈 밑에서 썩어가겠지요.

새하얀 향이 세상을 품을 때, 새하얀 꽃이 세상에 머물 때, 붉은 향의 그대가 오시려나 밖으로 뛰쳐 나가노라. 수북한 눈을 딛고 아무리 울어도, 곧고 새하얀 달 아래에서 그대의 차디찬 온기를 되새길 뿐이라. 불게 물든 동백꽃 위에서 고운 그대의 옷깃을 찾아낼 뿐이라. 오지 못할 그대 와주시려나, 귀신이라도 좋으니, 달빛만이 머물다 간 내 곁에 와주시려나. ...

멈추어도 멈추지 말고 언젠가는 나아가세.

그저 나아가세. 시냇물이 흘러가듯이, 우리를 고이도록 두지 마세. 우리가 썩도록 방관치 마세. 우린 알잖소. 계절이 끝맺으면 시냇물은 틀림없이 흐를 것이란 것을. 봄이 피어나면 시냇물 속에 삶이 흐를 것이란 것을. 우린 알잖소, 우리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자신을 위해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그러니, 시냇물이 흘러가듯이 그저 나아가세.

겨울이 왔다고 한들, 시냇물은 언젠간 흐를 것이오. 그러니 나아가보세.

그저 나아가세. 시냇물이 흘러가듯이 우리를 고이도록 두지 마세. 우리가 썩도록 방관치 마세. 우린 알잖소. 겨울이 끝맺으면 시냇물은 틀림없이 흐를 것이란 것을. 봄이 피어나면 시냇물 속에 삶이 흐를 것이란 것을. 우린 알잖소. 시냇물이 흘러가듯이, 그저 나아가세.

모두가 한을 노래하는 까마귀매, 오늘도 목이 쉬어도 울음을 멈추지 못한다.

누굴 찾아 울다가 그리 목이 다 쉬어버렸는가. 누굴 찾아 태양 아래를 헤맸는지 그리 타버렸는가. 깊은 눈동자는 무얼 바라보고 또 날개를 어딜 향하던가. 삶을 살고 다시 살아도 모를 테지만 그 울음에 녹아든 한을 안다. 그 날갯짓에 묶인 한을 안다. 임이 되돌아오기만을 바라던 안으로 날던 날갯짓을 알고 임을 찾아 나서면서 애타던 밖으로 날던 날갯짓을 알고 있...

나 가거든, 내 마지막 바람을 들어주오.

나가거든, 눈물을 흘려주시오. 나 죽거든, 구슬피 울어주시오. 허나 비참해지지는 말아주시오. 눈물 한 방울에 나와 당신을 담고 눈물 두 방울에 우리의 사랑을 담고 눈물 세 방울에 둘의 삶을 담아주오. 가는 길에 비가 내린다면 그대 눈물로 알겠소. 그 물방울에 맺힌 우리를 보며 돌아가겠소.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한없이 울고 훌훌 털어 살아주오. 그대 내게 올...

왜 사랑을 모르오, 왜 자유를 모르오, 왜 의지를 모르오.

"거, 당신은 뉘신 데 여기 있는 것이오?" "당신의 새로운 부인이옵니다." 내 말에 환히 웃으며 대답하던 낯선 이는 내 임이라 칭했노라. 내 임은 당신 같은 이가 아니라 체구가 작은 여인이노라. 내 임은 당신 같은 이가 아니라 나만 바라보던 여인이노라. 낯선 그대에게 묻고 싶소, 내 이름은 아시오? 내 마음은 아시오? 그 사랑을 아시오? 구태여, 사랑을 ...

비익조, 하나의 눈과 날개만을 가지고 있어 한쌍이 되어야 날 수 있는 새라 합니다.

꿈을 꾸었소, 비익조인 내가 그대와 달빛 아래를 날아다니는 꿈을, 꿈에서만큼은 나와 그대 둘 다 비익조였소. 날개가 하나밖에 없어 서로에게 의지해 날아가는 그 비익조 말이오. 꿈을, 허망된 꿈을 꾸었소. 여기저기 땅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나의 종달새여. 여기저기 하늘을 누비며 노래하는 나만의 종달새여. 비익조인 나는 당신을 품을 수 없단 말이오? 사랑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