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방에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어. 우리는 방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어. 달빛은 우리를 차갑게 비추고 있었지만 우린 서로를 직면하지 않고 목을 졸랐지. 나는 마음속 깊숙히 너를 무시했었고 너는 목이 터질 듯이 소리를 질렀었지. 나는 나의 목을 졸랐고 넌 조용해졌지. 우리는 달빛을 두고 바라보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 무엇보다도 어긋나고 있었어. 결국엔 ...
널 그리워하다가 황혼빛이 꺼져 버렸다. 네 생각만 하다가 새벽 내음에 잠들었다. 드넓은 하늘에 너 말고는 무엇도 없더라. 하얗게 일렁이는 별도 반쯤 잠든 달도 모두 너였다. 스치듯 스며드는 바람도 불타는 해마저 모두 너였다. 언제쯤에야 널 볼 수 있을까. 하루 너머 보름 보름 너머 한달 한달 너머 한뉘 드넓은 세상에 너 없이는 무엇도 없더라. 네 올곧던 ...
뜯자, 먹자, 뜯어 먹자. 연필을 아득아득 뜯어먹자. 연필을 우득우득 뜯어먹자. 지독히도 여린 마음을 흑연으로 칠하고 지독히도 여린 피부를 나무로 덮어보자. 그 누구도, 내가 달라져도 모를 테니까. 어서 어서 수십 수백개의 연필을 입안 가득 넣어 씹어 삼켜버리자. 빨리 빨리 수천 수만개의 연필을 입에 쑤서 넣어 꿀꺽 넘겨버리자. 이 괴로움, 빨리 털어내기 ...
"익숙함에 속아"라는 말만큼 잘 포장된 말도 없다. 익숙함보다 자신의 분수를 넘치게 본 건 아닐지. 익숙함보다 상대의 분수를 얕잡아 본 건 아닐지. 봄이 지나야 봄인지 알 수 있는 게 아니라, 봄을 지나 여름이 좋을 줄만 알고 있었던 거다. 익숙함에 속는다고, 바스러지는 꽃잎처럼 비유될 순 없다. 봄이 지나야 안다고, 떨어지는 꽃잎처럼 포장될 수는 없다. ...
꽤나 이성적인 편이면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런 주제에도, 시를 적는다. 내가 무심히 버린 나의 감정을 되찾고자 쓰레기통에 처박히듯 책상에 엎어져 시를 짓는다. 지독히도 겁쟁이의 냄새를 잊은 듯이 시를 적는다. 그렇게 감정을 시에 녹여 노래한다. 하지만 내일이 오면 다시 버리겠지. 그리고 다시금 찾고 또 노래하겠지. 언제쯤에야 솔직해질 수 있을까. 언...
비집고 헤쳐서 움켜쥐고는 힘을 꽈악 주어 터트리자. 더 깊은 곳, 초자아 아래에 더 깊은 곳, 준자아를 너머 그 끝에서 모든 걸 터트리자.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은 이. 이곳, 지옥처럼 원초적인 여길 부수자. 이곳, 지옥처럼 엉클어진 여길 부수자. 저곳, 여길 이어주는 연결점도 지우자. 네가 좋아하던 추억이 있다면, 뭉개자. 네가 사랑하던 그림이 ...
희끄무레한 구름 사이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흐리멍덩한 내 눈동자에 떨어지니, 여름이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려야 했고 나도 모르게 옆으로 시선이 갔고 나도 모르게 너도 모르게 널 봤다. 푸르러질 하늘 아래에 빗방울이 떨어지니 무덤덤한 내 마음에도 사랑이 스며들었다.
하늘에 닿지 못할 수많은 보석이 수놓아져 있어. 하늘에 잊지 못할 수많은 이야기가 빛나고 있어. 하늘에 보질 못할 수많은 세상이 숨어있을 텐데, 우린 하늘에서 이곳으로 온 걸까? 그렇담, 저곳에 무엇을 놓고 온 걸까. 이 몸이 헤지고 닳아 멈추면, 그땐 알게 되려나. 그 전까지는, 저 하늘도 탐낼 추억을 가득 만들자. 그 전까지는, 저 하늘도 기억할 꿈을 ...
찬란한 노란 태양 아래에 네가 있었고 그 옆에 푸른 바다 아래에 내가 있었지. 우린 평행선 마냥 색이 섞이지 않았지. 너는 아름다운 하나의 별이 되어갔고 나는 떠오르지 못할 심해가 되어갔지. 네가 보는 하늘을 보고 싶다며, 네가 있는 우주를 가고 싶다며 하루가 멀다하고 너를 그리워했지. 그렇게 우린 다시 만났어, 내 그리움이 닿은 덕분일까. 별똥별이 떨어지...
갈비뼈를 헤집은 후 폐를 찢고 나서야만 내 심장을 얻어냈지. 다시 되돌아 오길 빌며 다시 자리 잡기를 빌며 내 심장을 삼켜 버렸지. 하지만 나는 몰랐어. 심장이 변했다는 걸, 나를 떠난 사이에. 나도 변했다는 걸, 심장을 잃은 사이에. 온 손에 갈비뼈가 찔리는 것보다 질긴 폐에 손톱이 뜯기는 것보다 내 심장을 잃은 게 너무나 커서 나 공허하게 살아갈 수는 ...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둘 수만 있다면, 네가 준 귀찌를 넣어둔 곳에 간직할 텐데. 왜 자꾸만 난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헤아리지도 못할 별들을 헤아리면서 이미 잠든 네가 달을 보고 있다면서 함께 별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질까. 너는 꿈을 꾸고 있겠지, 푸른 하늘 아래서 너는 푸른 미래를 그리겠지, 넓은 화폭에 나도 푸른 빛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싶다. 먹물이 흩어...
난 말린 꽃이 좋소. 시간을 멈출 수 있다는 오만함이 생기니 말이오. 난 날 좋아하는 당신이 좋소. 나도 사랑할 수 있다는 오만함이 생기니 말이오. 신이라는 것들은 좋아하지 않소. 날 사랑하노라면, 날 어리석게 만들지 않을 테니 말이오. 내가 멍청하다면, 내가 무감각하다면 나를 말린 꽃처럼 대하는 당신이 좋소. 난 말린 꽃이 좋소. 말라버린 이 몸을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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