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떠나가고 싶어라. 여느 날처럼 불어온 바람처럼 파아란 하늘 아래를 떠나고 싶어라. 이젠 울 기력도 없어, 메마른 눈가. 다들 내가 좋아졌다고 멀어져만 갔지. 나쁜 사람은 되지 않았으니, 떠나갔지. 망망대해, 나의 눈물이 바다가 되어버렸고 그 바다 아래 내 심장이 잠겨버렸지. 내 눈물이 다들 날 떠나보내게 했지. 그들이 날 떠났듯이 나도 세상을 떠나고 ...
어슬렁, 어슬렁. 오동통한 꼬리털 휘날리며, 새노란 눈빛 환히 밝히며, 어슬렁, 어슬렁. 산속 깊은 곳, 외로운 호랑이 하나, 산을 지나는 사람마다 주위를 어슬렁, 어슬렁. 산 속 깊은 곳 장난스러운 호랑이 하나 산을 지나는 사람 앞에 번쩍 나타나,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어흥, 쫘악 하품을 하며,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어흥, 쭈욱 기지개를 피...
일렁이는 달빛 아래 숨이 가파오를 듯한 공기가 머물고 내려가지 않을 열은 자꾸만 오르네. 잊혀지지 못할 한 여름이 추억을, 잊어버리지 못할 여름밤 추억을, 가득히 만들어 가네. 새하얀 와인으로 잔을 채워, 넌 시큼한 향을 사랑하니. 한 잔, 두잔에 기분이 좋아지고 베시시 나오는 웃음을 감추기 힘들어지네. 너만을 향한 내 눈길을 돌리기 힘들어지네. 일렁이는 ...
밤 하늘 아래서 검은 강에 미끄러지듯 노니는 희고 흰 오리 한 쌍을 보았소. 심해와 같은 검은 강 위로 붉은 낙엽이 스며들고 노란 달빛이 일렁였소. 매화가 지는 날에 보러 가세. 푸르른 하늘 품에서 새파란 강 위를 사랑하듯 노니는 희고 흰 오리 가족을 보러 가세. 구름과 같은 하늘하늘한 강 위로 진홍빛 벚꽃잎이 스며들고 그대를 향한 마음이 살랑이는 낮 하늘...
봄에 피어나는 흰 목련같은 너는 봄이 사랑하는 참 고운 사람이지. 봄뿐만 아니라 모든 계절이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해. 봄은 고운 널 본 따 목련을 피우고 여름은 너로 한 여름 밤의 꿈을 짓고 가을은 하얀 널 서리로 남겨두려 하고 겨울은 투명한 널 언 강처럼 아끼지. 계절뿐만 아니라, 모든 세상이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해. 봄에 피어나는 목련도 ...
끝내 달은 뜨고야 말았고 나는 너를 그려야만 했다. 차디찬 달 아래 비치는 바다는 침묵하니 쓰디쓴 밤바람은 추억을 실어 가버리고 나는 이 밤처럼 너를 짙에 앓아야만 했다. 깊이 앓아, 너무나 깊게 앓아, 네가 눈 앞에 아른거릴 정도였다. 이뤄질 수 없는 꿈을 꿀 정도였다. 그러다 결국 달이 사라지고 해가 떠, 바다의 소란스럽던 침묵이 끊겼다. 고요한 새의 ...
검은 나비를 보았지. 아주 작아서, 심장도 없을 것 같았지. 너무 미워서, 영혼도 죽은 줄 알았지. 그래서 죽였어. 손으로 쥔 채로 말야. 꽈악 손 힘으로 말야. 그 후에, 또 다시 봤어, 검은 나비를. 죽이고 또 죽여도 만나, 검은 나비를. 그래서 보냈어. 손으로 잡지 않고서, 자유롭게. 권력을 휘두르지 않고, 따스하게. 그러더니 다른 손에 죽더라. 아주...
푸른 하늘 한 아름 가져다가 가슴 깊이 고이 보관하다가 가슴 앓이하게 될 때마다 푸른 하늘 한 모금 마셔야지. 푸른 하늘의 첫맛은 새하얀 구름 맛 다음 맛은 구름 뒤에 숨은 따스한 해 맛 끝맛은 이 모든 걸 잊게 해주는 바람 맛 사이사이, 풀의 푸른 맛도 재잘거리는 상쾌한 새소리 맛도 하나하나, 모두 음미하며 마셔야지. 푸른 하늘 한 모금에 그날의 감각과 ...
가을은 죽음의 계절, 나뭇잎이 썩고 과일이 문드러지는 황홀하고도 덧없는 죽음의 계절. 자연히 죽을 때를 미룬 인간들은 가을이 죽음의 계절인지도 모르고 살아간다. 가을이 탄생의 계절인지도 모르고 죽어간다. 가을이 되면, 저 멀리 떠나간 하늘 아래 곡식이 꺾이고 저 아득해진 하늘 아래 겨울잠이 준비되고 썩어버릴 세상으로부터 살 자들의 것들이 비축된다. 하염없이...
혀끝에 말이 맴돌았다. 아니, 말이 맴돌 혀도 없었다. 이미 혀는 난도질 되어 있었다. 그 누구도 나의 변론을 듣지 못했다. 허약한 나를 방치한 이도 죽어간 나를 구원한 이도 비루한 나를 사랑한 이도 모두 나의 병명을 듣지 못했다. 혀끝에 말이 맴돌았고 말이 맴돌 혀가 없다는 걸 알았을 때 억누를 감정도 거짓이란 걸 알았을 때 그 누구도 나의 진실을 믿지 ...
모든 걸 털어버리고 마지막 춤을 추자. 강물 맛과 붉은 철 맛이 뒤섞일 때까지. 허연빛 아래 검은 드레스가 해질 때까지. 눈동자가 주홍빛 어둠에 삼켜질 때까지. 마지막 춤을 추자. 과거로 미래로 이 순간마저 망각한 채, 누군가가 아닌 아무나로 탈바꿈한 채, 못 돌아올 춤을 추자. 해골의 손을 잡고 붉은 장미를 건네, 마지막 춤을 추자. 춤이 끝나면 레테의 ...
끝내 비는 오고야 말았고 나는 네가 사라진 하루를 보내야만 했어. 나는 네가 흩어진 하루를 느껴야만 했어. 끊어질 듯한 숨을 부여잡고 울던 넌 치열하게 나를 붙잡고는 살려고 했지. 슬프게도 붙잡을 만한 게 나밖에 없었지. 너는 말했어, 밤하늘에 살아갈 수 없는 별은 이리도 아름다운데 살 수 있는 이 행성은 왜 이리 추잡스러운 거냐고. 나는 아무런 말도 못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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